이방인, 뫼르소는 정말 정당방위였을까? 이정서의 이방인 비판

이번 이정서 씨의 <이방인> 번역본 논란이 너무 급작스럽게 '차단'되어 몇 가지 논의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개의 글을 더 남겨보려고 합니다.

이정서 씨의 번역본에 여러 번역과 관련된 오류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번역의 오류들을 훨씬 초과하는 이정서 씨의 해석이야말로 더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해한 것은 정당방위였다는 주장이었지요.

이러한 주장은 이제 잉크가 종이 위에 말라버린 채 유통 중인 새움출판사의 <이방인> [역자노트]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하 이미지는 전부 [역자노트]에 실리고, 새움출판사가 공개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 설령 이정서 씨의 번역본에 따르더라도 도출될 수 있는 것인가요? 한 번 이정서 씨의 번역본을 보겠습니다.


어려울 것 없이 한 문장 한 문장 독해해나가겠습니다. 뫼르소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 단검에서 번쩍이는 '빛의 칼날' 밖에 안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타는 듯한 칼날'이 속눈썹을 파고듭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빛의 칼날'이 무엇일까요? '햇빛'에 대한 은유겠지요? (갑자기 단검이 변신해서 빛의 칼날이 되었다든가, 그런 이야기는...)

원문에는 이렇게 쓰였습니다.

la glaive éclatant jailli du couteau - p. 87.

'glaive'는 '검', 'éclatant'은 '눈부신', 'jailli'는 '솟아났다', 'du'는 '에서', 'couteau'는 '칼'.

단어만 그대로 옮기자면 '칼에서 눈부신 검이 솟아났다'입니다. 물론 저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옮겨놓았을 수는 있고, 이것을 '빛의 칼날'이라고 번역한 것도 나름 마음에 듭니다. 여하간, 이 '칼날'이 물리적인 칼날이 아니라, 칼날에 반사된 햇빛을 나타낸다는 것은 이해가 되실 겁니다. 더구나 'éclatant'은 원래 태양과 같이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 바로 다음 문장에서, 속눈썹을 파고드는 '그 타는 듯한 칼날'은 무엇을 지칭할까요? 바로 앞 문장의 '빛의 칼날'을 지칭하겠지요. 이 '빛의 칼날'은 햇빛입니다. 다시 연결시키면, 뫼르소의 속눈썹을 파고드는 '그 타는 듯한 칼날'은 햇빛. 햇빛이 뫼르소의 속눈썹을 파고듭니다.

이정서 씨는 이렇듯, 나름대로 준수한 번역을 해놓고서도 정당방위라고 주장합니다. 왜냐? 이정서 씨가 보기에는 이 '타는 듯한 칼날'이 햇빛이 아니라 실제의 물리적인 칼날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문장을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뫼르소가 총을 쏜 것은 '햇빛에 반사되어 눈을 찌르는 위협적인 칼날'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단 의문이 듭니다. 칼날이 햇빛에 반사가 될수 있나요? 햇빛이 칼날에 반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여기서 이정서 씨는 본인의 번역은 물론, 햇빛이 칼날에 반사되는 것이지, 칼날이 햇빛에 반사되는 것은 아니라는 과학적 사실(?)까지 뒤엎습니다. 이정서 씨가 번역했던 그대로를 저 문장 형태로 나타낸다면, "뫼르소가 총을 쏜 것은 '단검에 반사되어 눈을 찌르는 위협적인 햇빛'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정서 씨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는 점에서, 이정서 씨의 책임이 크지 않은가 싶습니다.

재반론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 마지막 문장은 단순히 오해이고, 어쨌든 뫼르소는 물리적인 칼날에 의해 위협받은 것이 맞다고 말입니다. 즉,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앞선 '빛의 칼날'과는 다르고, 아랍인의 단검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원문을 보면 이는 불가능한 해석입니다.

원문에서는 아랍인이 들고 있는 단검을 'couteau'로 지칭합니다. 부엌에서 쓰는 식칼이나, 여하간 비교적 짧은 칼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반면 저 '그 타는 듯한 칼날' 부분의 원문을 보겠습니다.

Cette épée brûlante - p. 88.

'Cette'는 '이', 'épée'는 '에페', 'brûlante'는 '타는'.

나머지 단어는 차치하고 '에페'만 보겠습니다. 하계 올림픽을 본 분들은 아시겠지요, '에페'가 무엇인지를. 그냥 '칼'이 아니라 '검'입니다. 장검 말입니다. 때문에 이 'épée'를 'couteau'와 동일시한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마무리를 지어볼까요? 구글 검색입니다.

우선 'couteau'.


다음은 'épée'.


햇빛 때문에 사람을 쏴 죽여도 정당방위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제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니까 직접 이미지도 올릴 수 있고 참 좋네요 ^^ 사실 이번 논쟁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 중 하나가 바로 그 '수단'의 차이였습니다. 한 쪽은 잘 편집된 글로 반박을 하는데 다른 쪽은 좁디 좁은 댓글창 안에서 맞서야 하는...

덧글

  • 멀리서 2014/05/07 10:08 # 삭제 답글

    명확하네요. 알라딘에 올리면 좋겠습니다. 남들도 다 볼 수 있게요.
  • indifference 2014/05/07 10:21 #

    알라딘에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 ㅇㅇ 2014/05/07 10:18 # 삭제 답글

    이렇게 보니 깔끔하니 좋군요! 알라딘에는 링크를 걸어두는 게 어떨까요?^^ 두 쪽 다 올려두기 번거로우실 것 같으니.. 트위터로 공유해도 될까요?
  • indifference 2014/05/07 10:21 #

    알라딘에도 올리겠습니다 ^^ 공유는 얼마든 가능합니다.
  • 함께살기 2014/05/07 19:24 # 삭제 답글

    한숨을 쉬면서 댓글을 하나하나 모두 끝까지 읽었습니다.
    참 한숨이 나오는 일이 너무 버젓이 일어납니다.
    그저 슬프고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 뒤로만 가는...
    그 출판사와 대표 모습을 보면서,
    이런 모습 때문에 책마을이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새움'이란 무엇일까요?
    그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 줄 모르는 듯합니다.
  • indifference 2014/05/07 20:59 #

    많이 안타깝습니다..
  • 한말씀 2014/05/08 04:56 # 삭제 답글

    저 단검과 장검의 구글이미지만으로도 새움 번역자의 '정당방위설'은 종결되어 마땅합니다만.
  • indifference 2014/05/08 08:43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당방위 여부를 두고 논쟁하는 건 별로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 공현 2014/05/08 11:53 # 삭제 답글

    생산적이지 않다고 쓰시긴 했지만 ㅋ 이정서씨의 '정당방위' 주장에 대해 간단히 정리를 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정당방위' 개념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너무 법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거고, 이정서씨도 그정도야 알 텐데- 대체 어떤 의미로 정당방위란 말을 하는 걸까요. 본인은 '정상참작' 정도라는 이야길 하기도 했는데...
    일단 이정서씨 생각에는 발포가 '정당방위'라는 이야기가 피살당한 아랍인이 '기둥서방'인 것, 즉 레몽을 속인 악한이라는 이야기와 별개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피살당한 사람이 레몽을 속이기까지 한 사태의 원흉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정당방위와는 별 상관은 없는 문제인데도...
    그 다음으로는 이정서씨 스스로도 일어나지도 않은 채로 칼을 겨누고 있는 사람을 총으로 쏘는 게 법적으로 정당방위가 성립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정서씨는 뫼르소가 총을 쏜 것이 태양 때문이 아니라 '정당방위'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요. 그 말로 미루어볼 때, 이 '정당방위'라는 말은 뫼르소의 발포 동기를 설명하려는 것 같습니다. 즉 뫼르소는 칼날(또는 칼에 비친 햇빛)에 '위협', 두려움을 느껴서 총을 쐈다는 거죠. 즉 소설 해석에서 문제가 되는 건, 객관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느냐가 아니라 뫼르소가 두려움이나 위협을 느꼈느냐 같습니다. 그런데 언급하셨다시피 장면 서술을 아무리 봐도 뫼르소의 1인칭 서술이지만 위협이나 두려움을 느꼈다는 등으로 해석할 표현은 없어 보입니다. 혹시 이정서씨는 '빛의 칼날이 눈을 후벼판' 것을 그런 표현으로 보는 것일까요? ;;;
  • indifference 2014/05/08 12:22 #

    네, 아랍인이 '기둥서방'인 것과 밀접한 관련이 될 겁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원흉인 것과 정당방위인 것은 별개 문제죠 ^^;

    저도 어디서 그 '위협'을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느끼는 것이지만, 이정서 씨의 살인 장면 번역에서 '나는'이라는 단어는 몇 개 빼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직역 위주라지만 조금 괴롭군요..
  • ㅁㄴㅇㄹ 2018/02/15 14:55 # 삭제 답글

    아랍인이 단도를 들었고, 뫼르소는 그 단도에 비친 햇빛(빛의 칼날, 타는듯한 칼날) 때문에 총을 쏜 것...아닌가요? 결국 햇빛 때문에 총을 쐈다는 것인데 그걸 정당방위라고 하다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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