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움출판사 블로그의 변화 이정서의 이방인 비판

새움출판사 블로그 http://saeumbook.tistory.com 에서 <이방인> 관련해서 게재되었던 글 대부분이 사라졌군요. 단순 홍보용 글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삭제되거나 비공개로 바뀐 것 같습니다.


일종의 '자백'일까요? 아니면 오류일까요? 혹은 다른 의도가 있을까요? '자백'이라면 그냥 삭제하고 넘어가지 말고 확실히 이정서 씨가 사과를 했으면 좋겠네요.

"parce que"도 제대로 번역을 안 한 이정서 이정서의 이방인 비판

'parce que'는 매우 기초적인 프랑스어입니다.


네이버 사전 옆에 별 두 개 보이시지요? 접속사, 게다가 뜻도 별로 안 어렵습니다.

마침 이번 이정서 씨 연재분에 http://blog.naver.com/returna/220111188438 해당 단어가 등장해요.

J’avais envie de ce tissu fin et je ne savais pas très bien ce qu’il fallait espérer en dehors de lui. Mais c’était bien sans doute ce que Marie voulait dire parce qu’elle souriait toujours.

이정서 씨는 본인 번역본을 비롯해 네 개 번역본을 제시하네요.

그 얇은 천을 느껴 보고 싶었고, 그것 말고 달리 어떤 희망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인지 정말로 알지 못했다. 아마 마리의 의도도 그랬겠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 이정서

나는 그 얇은 천에 욕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 천 말고 또 무엇에 희망을 품어야 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리가 하고자 한 말도 아마 그런 뜻이었으리라. 마리는 줄곧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 김화영

나는 그 얇은 천을 원했다. 그것 말고 대체 무엇을 희망하라는 건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모양으로 보아 마리가 하려던 말은 정말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 김예령

난, 그 얇은 천을 만지고 싶었고, 그 이외에 뭘 바라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마리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마리가 하고 싶은 말도 바로 그것 같았다. - 이기언



이정서 씨는 '얇은 천'을 '욕망'한다거나 거기에 '희망'을 품는다는 표현에 불만이 있는 모양이지만, 원문(envie, espéré)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괜한 시비입니다.

다시 'parce que'로 돌아갑시다. 마침 이런 댓글이 달렸네요. 


동의해요, 이정서 씨 번역이 유독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옵니다. 'parce que' 부분만 볼게요.

Mais c’était bien sans doute ce que Marie voulait dire parce qu’elle souriait toujours.

여기서 'parce qu'elle'이 'parce que'입니다. 번역본을 비교해보죠.

아마 마리의 의도도 그랬겠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 이정서
마리가 하고자 한 말도 아마 그런 뜻이었으리라. 마리는 줄곧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 김화영
하지만 그녀가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모양으로 보아 마리가 하려던 말은 정말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 김예령
그런데 마리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마리가 하고 싶은 말도 바로 그것 같았다. - 이기언

이정서 씨 번역본만 유독 다르죠? 나머지 세 분의 번역본에서는 마리의 미소와 마리의 의도 사이에 연관이 있어요. 뫼르소는 마리가 웃고 있는 걸로 미루어 보아 마리의 의도가 그러리라 짐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요? 'parce que' 때문이죠.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마리가 말하려던 것이었을 텐데, 왜냐하면(parce que) 그녀가 계속 미소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서 씨는 이 'parce que'를 빼버렸어요. 더구나 접속사 'Mais(하지만)'를 뜬금없이 중간으로 옮겨 버렸어요. 그래서 엉뚱한 접속사가 엉뚱한 자리에 가버렸습니다. 이 구절은 뫼르소의 성격, 마리가 웃는 걸 보아 자기 추측이 맞겠거니 하는 그 직관적인 성격을 보여주는데 이정서 씨 번역엔 그런 점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간과할 수 없는 오역입니다.

출간된 번역본에도 이대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정서 씨, 제 엮인 글 삭제하지 말아 주세요. 페어 플레이 합시다.

혹시 이정서 씨가 본문을 수정할까봐, 스크린샷.


Agnès Spiquel로부터 받은 편지 추가 공개 이정서의 이방인 비판

이정서 씨의 새 글 http://blog.naver.com/returna/220106944454 을 기념해서 Agnès Spiquel로부터 받은 편지를 추가로 공개하겠습니다.

이정서 씨는 예전부터 우리가 레몽을 오해해왔다고 주장해왔지요.



레몽은 양아치가 아니다,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 등의 의견이었지요. 그렇다면 Spiquel의 의견은 어떨까요?


(중간에 사적인 대화 부분은 편집했습니다.)

친애하는 카뮈 독자님에게,

우선 제 답장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당신의 문의는 전혀 "우스꽝스럽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드리고 싶습니다. 번역과 관련된 질문은 까다롭고 동시에 중요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나라 사람들이 그 작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카뮈의 텍스트는 아립인이 레몽 옛 정부의 남자 형제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더구나 레몽은 분명히 포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동네에서는 그가 여자들을 등쳐 먹고 산다고들 한다. - 김화영 번역). 그는 뫼르소로 하여금 거짓 진술을 하게 하고 해변에서 아랍인들을 도발합니다. 그는 알제리에 사는 인종 차별적인 프랑스인의 전형입니다. 더구나 그는 여성들을, 특히 아랍계 여성들을 경멸합니다. 그는 아랍인을 "쏘아버리려고(김화영 번역)" 계획했으며, 뫼르소가 권총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설령 그가 법적으로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도덕적 측면에서 책임이 없다고는 결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정서 씨 말이 맞는다면, 단순히 김화영 씨와 한국 독자들만이 아니라 프랑스의 카뮈 연구자들도, 프랑스의 독자들도 레몽이라는 인물을 오해하고 있었군요. 즉 이정서 씨 혼자서(?) 카뮈를 제대로 이해한 셈인데, 카뮈는 모두에게 오해를 받았음에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인가요? 헷갈리네요.

참고로 Spiquel이 회장으로 있는 카뮈 연구회 회원들은 플레이아드 카뮈 전집, 카뮈 연구 논문 모음집, 카뮈 서신 교환 모음집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24개국에 350명이 넘는 회원이 있는 연구회입니다.


다음으로 이정서 씨는 이런 주장을 하네요.


'bien'은 상대적 존대인데 'bon'은 그렇지 않다? 이 맥락에서 'bien'은 '큰 공감'인데 'bon'은 '애매'하다?

프랑스어 회화 하면서 'bon, je vous laisse'라는 표현을 들어 보셨나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라는 표현이지요. 얼마든 'bon'을 존대로도 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장면 뒤에도 여전히 예심판사는 뫼르소한테 존대를 하거든요... 하대로 바뀌는 건 더 뒤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심판사가 피의자의 진술을 듣고 있는 것인데, 거기에 '크게 공감'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크게 공감'을 표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듣고 있어야 하지요. 여기선 그냥 당신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bien'이나 'bon'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정서 지지자의 지겨운 법적 대응 운운 이정서의 이방인 관련 잡담

요즘 이정서 씨 네이버 블로그에 자주 글을 다는 분이 계십니다. 필경사바틀비라는 분인데, 계속 이정서 씨더러 법적 대응을 하라고 '조언'하는군요.


개인적으로 쌍방 비평과 의견 교환을 잘라내고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윽박지르는 것은 정말 치졸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전혀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남의 번역을 폄훼하고, 툭하면 문학의 기본도 모른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그러니까 더욱 치졸해 보입니다. 도대체 이 필경사바틀비라는 분은 어떤 분일까요?

이게 이 분 블로그입니다.


역시나 저를 포함한 여러 독자 내지 비평자들의 인격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 이정서 씨를 옹호하는데, 이건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우선 아이디를 봐주시지요. son630218입니다. 고마해라님이 지적해주셨다시피(해당 글) 이 아이디로 검색을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새움출판사에서 낸 책을 추천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예스24에 들어가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전부 새움 책들을 추천하는 내용이지요. 저 아이디로 남긴 리뷰는 이 3개가 전부(교보문고 1개, 예스24 2개)입니다. 필경사바틀비님이 개인적으로 새움출판사를 좋아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개인이 그렇게 좋아한다고 남들의 비평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필경사바틀비님이 예전부터 이정서 씨와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예전부터 꾸준히 새움출판사 책을 추천하고 다닌 것만큼은 분명하네요. 이게 문제가 된다는 건 아닙니다만, 본인은 한 출판사를 이렇게 열렬하게 응원하면서 남에 대해서는 다른 출판사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고 뜬금없는 혐의를 덮어 씌우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다들 이정서 씨의 네이버 블로그 아이디를 아실 겁니다. returna입니다. 이 아이디가 오마이뉴스 기사에 달아놓은 댓글을 보겠습니다.


네, 새움판 <이방인>을 소개하는 기사에 자기 아이디로 댓글을 달고 있었습니다. 댓글다는 것이야 이정서 씨(이대식 씨?)의 자유이지만, 자기 책을 소개하는 기사에 댓글을 단다면 최소한 본인이라고 소개하고 자기 블로그 주소를 링크걸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법적 대응 운운하기 전에 본인들부터 당당하게 행동하세요.



다시 필경사바틀비님의 저 맨 위의 댓글로 돌아가 봅시다.

'정보통신망이용법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저촉이라네요. 그런 법 없습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입니다. 법 이름부터 잘못 옮겨 적었습니다.

그리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모욕죄가 없습니다. 모욕죄는 '형법'에 있는 죄입니다.

'저작인격권'은 저작권을 침해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지 명예훼손이랑 모욕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정말 명예훼손죄랑 모욕죄가 문제가 될까요? 최근 추세는 비평이나 소비자 의견에 대해서 이들 죄를 잘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한 번 대법원 판례를 보지요.

판례에 따르면 "다수의 인터넷 사용자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 및 의견의 제공이라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면 명예훼손이 안 됩니다. (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8도8812 판결) 마찬가지로 이정서 씨의 <이방인> 번역본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 판가름하기 위해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기가 힘들어 명예훼손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물론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확답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죄의 성립이 '분명'하다거나 죄에 '해당'된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무엇보다, 그렇게 법적 대응 운운할 것이라면 본인이 사용하는 표현부터 정제하라고 권하고 싶군요.




정확한 법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상대방의 비평과 의견을 법적 대응으로 윽박지르겠다는 행동, 정말 보기 싫습니다.

이정서의 반성(?) 이정서의 이방인 비판

예전에 이정서 씨는 김화영 씨의 번역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다지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틀린 비판입니다.

고마해라님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un teint un peu rouge'에는 '얼굴을 붉혔다'라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정서 씨는 소설의 맥락이 어떻고, 카뮈가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지 힘주어 말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un teint un peu rouge'에 '얼굴을 붉혔다'는 의미가 없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rouge'는 '붉다'라는 형용사로서, '얼굴색'이라는 의미의 'teint'을 수식해줍니다. 그러므로 '붉은 얼굴색'이 되지요. 반면' 붉히다'는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아예 품사 자체가 다른데다가 의미도 다릅니다. '붉다'는 붉은 상태인 반면 '붉히다'는 '붉게 하는' 동작입니다.

이런 지적에 이정서 씨는 뭐라고 답했을까요?


"저는 불어전문가가 아닙니다.", "제가 전문적으로 설명드릴 능력이 없습니다."가 끝입니다.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설명할 능력도 없지만, 그래도 얼굴을 붉힌 게 맞아서 "얼굴빛은 조금 붉었다"는 오역이랍니다.

아참, 분명 위에서 'et'를 '그런데'로 번역해야 한다면서 설명 부분에서는 'et'를 인과관계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보면 볼수록 고치고 싶은 부분이 생깁니다.", "초기에 제 표현들이 너무 단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만약 정말 반성한다면 당장 연재를 중단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쯤해서 이정서 씨의 몇 가지 발언을 남깁니다.


그래서 정말 지구상에서 카뮈의 의도에 가장 근접한 번역인지 확인하려고 사람들이 검토를 해본 결과, 지적이 틀렸다느 것을 발견해 그렇다고 말을 해줘도, 고작 "저는 불어전문가가 아닙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네요. 아마 정말 반성한다면 "제 지적이 틀렸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하겠지요.

영어에서는 경어와 하대를 표현할 수 없다는 데서 영어에 대한 무지도 드러내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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